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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회

수선회

 

고요한 마음이 필요한 것은 오히려 옛사람보다 바쁜 현대인이요, 산사람보다 번잡한 도심일 것이다. 육신은 시공에 갇히지만, 마음은 시공에 가둘 수 없다고 했던가. 마음의 터를 닦아 도심에서 산중 선원과 히말라야의 고요를 경험할 수 있다면 도시생활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일 것이다. 한국 불교 1번지라는 서울 조계사의 ‘등잔 밑’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선회가 그런도심 선방이다.

조계사의 화려한 연등을 지나 조계사와 담이 맞닿아 있는 원당빌딩 3~4층에 올라가면, 참선하는 재가불자들의 얼굴에서 산사의 솔바람이 느껴진다. 세상 번민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바위처럼 앉은 재가선객들의 주위에는 선선한 기운만이 감돈다

순선회 회원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동자세로 앉아 오래도록 참선의 맛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선회를 이끄는 현담 스님은 오히려 부동자세도, 밤샘 참선도 강요한 적이 없다. 또 참선 중에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다고 죽비로 내려치는 법도 없다. 힘이 들면 언제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에 단 5분만 참선을 하라고 했다. “한 시간을 하겠다고 맹세하고 30분밖에 못하면 꺼림칙한데, 5분 한다고 다짐하고서 10분을 하면 흡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선회 회원들은 이처럼 부담 없이 5분 참선부터 시작해 참선을 습관화하고 생활화했다. 매주 토요일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하는 철야정진 때 8시간 동안 한번도 쉬지않고 참선하는 이들도 처음엔 그렇게 5분부터 시작했다.

1988년부터 수선회를 맡아 이끌고 있는 현담 스님이 스님들 가운데서도 소수만이 할 수 있다고 알려진, 어려운 참선의 핵심을 현대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주었다.

그는 마음을 화두, 생각, 망상으로 구분했다. 화두를 참구하지 않을 때에도 ‘의식적인’ 생각은 해야 하지만, 번뇌인 망상에선 벗어나야 한다. 화두 참구자들이 헷갈리기 쉬운 전제(全提)와 단제(單提)도 명쾌히 구분했다. 단제 자리는 괴로움도 공포도 죽음도 붙을 수 없는 근본 당체이며, 전제ㅡㄴ 찰나에도 수없이 감정과 생각과 번뇌가 오가는 자리라고 분명히 구분해줌으로써 초심자도 혼동 없이 매진 할 수 있게한다.

수선회는 선교육 후입방을 원칙으로 한다. 일단 누구나 현담 스님으로부터 다섯 차례의 참선교육을 받아야한다. 지금까지 참선교육 수료자만 4천여 명에 이른다. 교육 뒤 세번의 안거(90일간)를 거쳐야 정회원이 되어 양평의 산중선원에서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철야정진에 참가할 수 있다. 수선회에선 공식적인 철야정진만 300여 차례를 했다. 현재 1천여 명의 정회원이 있고, 이곳을 거친 이들 가운데 무려 120여 명이 출가해 전국 선방에서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간단명료한 지도가 수많은 수행자의 공부 길을 열어준 것이다.

참선 전문가인 그가 처음에 제시하는 것은 참선이 아니다. 그는 망상이 많은 사람들에겐 참선에 앞서 먼저 숫자를 세는 수식관을 하게 한다. 처음엔 50부터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센다. 중간에 숫자를 잊어버리면 다시 세야 하기에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숫자에만 집중하다 보면 걱정과 분노가 ‘쉬어지게’ 된다. 결국 수식관에 이어 가르치는 화두선도 번뇌망상을 쉬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선회라고 참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그의 법문이야말로 한 생각을 돌이키게 하는데 그만이다.

“마음이 마구니이고, 마음이 부처입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어떤 사람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날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곘구나’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힘든 일을 겪을 때 ‘왜 내게만 이런 고통이 오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리기 보다는 ‘이만하니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그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상대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자기가 자기를 괴롭힐 때 만나는 것이 바로 병입니다.”

그러면서 늘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라고 강조한다. 성한 다리로 걸을 수 있고, 가족이 있고 ¨¨¨ 감사할 거리를 헤아려보거나 공책에 낱낱이 적어보라고 권한다.

“상대를 편안하게 하고, 상대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스님의 법문으로 한 생각을 돌린 수선회 회원들이 다시 참선을 시작한다. 2500여 년 전의 부처,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멀게만 느껴지는 부처는 이제 없다. 불안한 마음을 쉬면서 평안해진 얼굴들이 말해주지 않는가.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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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

무상사

 

중국에서 한국으로, 천년이 넘는세월 동안 선사들은 선으로 무심법을 전해왔지만, 정작 대부분의 절집을 지배하는 이념은 ‘기복 불교’였다. 선은 산속에만 머물고 있었고, 소수의 선승들에 의해서만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현대에 들어 오히려 서양에서 선을 스트레스와 노이로제 등 마음 치유와 개인이 능력 개발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3년 연속 우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시카고 불스의 필 잭슨 전 감독은 우승 비결을 ‘선적인 훈련’이라고 답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선수들이 시합 날 전후해 20~30분씩 좌선을 하고, 경기 직전에도 1~3분간 좌선을 하면 승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최근미국에서는 불교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숭산 선사가 설립한 미국프로비던스의 홍법원에서만 외국 스님 50여 명이 수행하고 있다.

숭산 선사(1927~2004)와는 그의 생전에 3박4일간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했다. 경허-만공 선사의 법을 이은 고봉 선사로부터 스물세 살에 ‘깨달음’을 인가받은 숭산선사는 삼십대에 조계종 총무부장을 거친 후 마흔여섯 살에 단신으로 미국행을 결행해 누구보다 선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그의 가르침은 ‘오직 모를 뿐.’ 지식에 갇힌 서양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준 이 가르침은 너 자신을 알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나’라는 아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본래의 나’를 찾으라는 채찍이다.

“외국인들은 책을 많이 봐서 ‘개념’에 집착하는 편이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은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다.”

이제 숭산 선사의 상표가 된 ‘오직 모를 뿐’이란, 말 그대로 ‘생각 이전의 마음, 허공처럼 청정한 마음’이다. 신도, 부처도, 나도 없다는 생각과 판단분별 이전의 무심으로, 걸을 땐 걸을 뿐이며 밥을 먹을 땐 먹을 뿐이다. 번뇌망상 없이 ‘~뿐’이다,.

“‘Don’t Know’ (모를 뿐)의 마음으로 화두를 의심하면 의심하는 대상과 의심덩어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의심덩어리가 밝아지면 성품이 밝아져서 보고 비치는 모든 것이 진리 그 자체가 된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비록 육신은 늙고 병들어 금강산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는 산정에 오른 이들보다 더욱 풍족한 웃음을 만면에 머금었다. 많은 선승들에게서 보이는 ‘~체’보다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사람과 자연을 대했다.

숭산은 미국인 제자인 대봉 선사에게 법을 물려주고, 계룡산 무상사 조실로서 그의 사후를 잇도록 했다. 눈 푸른 스님들의 수행 터인 충남 논산의 무상사는 탁 트인 계룡산의 국사봉 자락처럼 ‘걸림 없는 자리’에 이르기 위해 머나먼 이국에서 온 외국인들의 수행 열기가 뜨겁다.

한국 선방의 전통에 따라 3개월 동안의 동안거(겨울집중수행정진)를 마치는 법회가 열리던 날 무상사 선원에 40여 명의 수행자가 둘러앉았다.

“집착을 버리면 모든 것이 선명해집니다. 자기의 의견과 편견을 버리세요. 그리고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선명해집니다. 의견과 주장을 버리면 모든 것이 선명해집니다.”

일체의 ‘안다’는 생각과 의견과 주장을 산산조각 내라는 것이다. 대봉 선사다운 법문이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심리상담가 출신으로 진리로 이끌어줄 스승을 찾다가 1977년 예일대에서 “집착하면 미친 것이다.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것이고 많이 집착하면 많이 미친 것이다 하나도 집착하지 않으면 제정신이다”라는 숭산 선사의 법문을 듣고 그 즉시 숭산 선사에게 귀의했다.

“저스트 두 잇”(오직 할 뿐)

“온리 돈 노”(오직 모를 뿐)

숭산 선사가 다르마(법, 진리)에 이르는 열쇠로 제시한 가르침대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순수한 백지의 마음으로 볼 뿐이고, 할 뿐이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파랗고, 설탕은 달고, 개는 짖습니다.”

수행자들이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시간에 각자의 마음 살림살이를 내놓았다.

“탁!”

러시아에서 온 비구 스님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입을 여는 대신 번개처럼 방바닥을 내리쳤다.

“나는 길입니다.”

홍콩에서 온 비구니 스님의 말에 미국에서 온 불자가 (길임을) 보여달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그 비구니 스님은 즉각 중국 노래를 불렀다. ‘탁’소리와 노래 소리에 어떤 번뇌가 머물 것인가. 이처럼 생각도 집착도 놓아버린 그들은 무엇을 갖고 하산할 것인가?

“오직 모를 뿐, 오직 갈 뿐, 오직 행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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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

용화 선원

 

단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참선의 공덕은 체험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인천 용화선원 시민선방에서 본 여섯 살 소정이의 모습에서 참선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소정이는 할머니를 따라 벌써 몇 시간째 선방 좌복 위에 앉아 있었다. 천방지축으로 뛰놀고, 잠시도 한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기 어려울 그 나이에.

어른들 틈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소정이는 조용히 선방에서 갑작스레 카메라 플레시가 터지자 눈을 뜨더니, 3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젠 카메라 플레시가 터져도 미동조차 않는다. 바깥 경계에 아랑곳하지 않는 폼이 번뇌를 여의고 선정 삼매에 든 여느 수좌(선승) 못지 않다.

매일 24시간 개방하는 용화선원 선방에선 200여 명이 서봉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원하는 시간에 수행한다.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엇을 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 실은 아는게 없다. 정작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좌시한 채 사소한 문제에 애걸복걸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시민선방의 수행자들은 ‘이 뭐꼬’를 화두를 들고,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묻고 있다. 주변 사람과 상황과 세상만을 시비하며 살아온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마음을 내면에 집중해 ‘나를 찾는 여행’에 나선 것이다.

번뇌망상은 화두에 몰두하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다. 번뇌망상이 들끓으면 오래 앉아 있기조차 어렵다. 따라서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잡생각을 떨치는 것이 첫 관문이다. 번뇌와 집착을 버리고 화두에만 몰두하다 보면 가슴을 짓누르던 고민과 스트레스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는 효과를 덤으로 얻게 된다.

한 호텔의 이사를 맡고 있는 전천웅 씨는 참선 덕을 톡톡히 보았다.

“2년 전 호텔이 부도난 이후 계속 설사를 할 만큼 불안에 떨었는데, 참선을 한 뒤로 마음과 몸이 모두 편해졌다.예전에 틈날 때마다 요정에서 술 마시고, 골프도 쳤지만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술도 마시지 않고, 골프도 치지 않지만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그는 “이제 몸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 죽은 뒤에는 내 몸 모두를 대학병원에 실험용으로기증키로 햇다”고 말했다.

과거 시부모와의 불화로 삶의 의지마저 잃었던 한 주부는 “예전엔 나는 잘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참선을 시작한 후로 상대가 모두 아름답게만 보인다”고 말했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무학 대사의 깨침이 체득된 것일까. 그는 “절에 다니며 12년이나 절을 하고,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해도 가라앉지 않던 마음이 참선을 통해 내면을 성찰한 뒤로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얼굴은 매우 밝고 편안해 보였다.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고락의 모든 차별 법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자성을 깨침만 같지 못하나니라.

석가보니의 교훈집인 <<사십이장경>>은 불교가 깨우침의 종교임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깨달음을 위한 선은 스님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안국선원의 열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일반인들도 참선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용화선원의 보살선뱅에선 매년 안거 때마다 200명 안팎의 여성 불자들이 스님들과 숙식하며 참선할 정도다.

시민선방에서도 중고등부와 청년부 불자들은 물론, 용화어린이집의어린이들까지 참선을 한다. 소정이가 익숙하게 참선에 몰두할 수 있는것도 평소 참선을 익혀온 때문이다. 하루 몇 분 씩의 참선은 어린이들을 훨씬 차분하게 만들고, 싸우거나 다치는 일도 크게 줄어들게 했다. 계속되는 시험에 지친 학생들도 참선으로 스트레스를 벗고, 집중력도 크게 향상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스위치를 꺼라. 걱정과 번뇌가 전심전력을 가리고 있으니, 걱정과 번뇌와 생각을 몽땅 쉬라. 그 뒤 동시에 켜라. 그리고 집중하라.”

시민선방에서 참선을 지도하는 서봉 스님은 학생들이 모든 생각을 놓고 스트레스와 흥분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다. 온전히 쉬어야 공부에도 온전히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착과 압박감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참선을 통해 무심의 경지에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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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선원

안국선원

 

“이것을 누가 움직이는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안국선원. 이곳에 첫발을 딛자마자 작은 방에 모인 신참자 수십 명이 선원장 수불 스님의 검지 끝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수불 스님이 오른손 검지를 다시 굽혔다 폈다 한다.

“과연 무엇이 검지를 움직이는가?”

이 몸을 움직이는 주인공을 찾는 것은 곧 선가의 근본 화두인 ‘본 성품’을 찾는 것이다. ‘나’를 찾는 것이며, 또한 나를 넘어설 길을 찾는 것이다. 인생 최대의 물음이 깊은 산중의 선승들이 아니라 선원에 첫발을 디딘 초심자들에게 던져진 것이다.

수불 스님이 이런 물음을 던지는 방식은 구습 그대로가 아니다. 선가에서 일상적으로 묻는 화두 중에는 옛날 책자에 자주 등장해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채 더는 의심을 불러오지 못해 ‘죽은 무자’(사구)가 되어버린 것이 많다. 그래서 수불 스님은 ‘이 뭐꼬’ 대신에 지금 이 자리에서 손가락을 통해 ‘나’를 찾게 했다. ‘살아 있는 화두’, 즉 활구(活句)다. 그러나 살아 있는 말도 살아 있는 귀가 아니면 들어갈 곳이 없다.

“내 손이 움직입니다.”

“아니요, 내 마음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참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내놓는다. 그러자 수불 스님의 일갈이 터진다.

“손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죽은 송장도 손이 있는데 그 손은 왜 움직이지 않는가.”

순간 초심자들의 숨이 멎은 듯하다. 앞이 캄캄해진다.

“손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앞도 뒤도 옆도 모두 벽으로 막혀버린 것만 같다. 신참자들은 답답해졌다. 숨이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수불 스님이 던진 낚싯바늘이 신참자들의 목을 관통한 듯하다. 수불 스님이 낚싯바늘을 당기기 시작한다.

“이 손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수불스님이 나사를 조이듯 질문의 고삐를 점점 조여 들어간다. 신참자들은 어느새 수불 스님의 끊임없는 질문에 오기가 생겨난다.

“이놈의 손을 움직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드디어 의심이 발동한다. 화두가 생명력을 잃고 사멸하고 있는 것은 의심을 불러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련한 낚싯군처럼 팽팽히 줄을 당기는 스님의 솜씨에 초심자들은 목에 걸린 낚싯줄을 뱉어내지도, 다시 삼키기도 못한다.

어미 소를 찾는 송아지처럼 초심자들은 그렇게 본성을 찾아 나선다.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존재를 찾느라 애타는 초심자들의 의심이 불길처럼  치솟는다.

 

한국의 선(禪)은 간화선 , 즉 화두선이다. ‘화두를 간한다’는 것은 심안으로 화두를 일거 자신과 화두가 일체화되고, 화두공안의 의심덩어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선의 조사들은 화두의 관문을 뚫기 위해선 360골절 8만 4천 털구멍을 가지고 몸 전체가 의심의 덩어리가 되어 조주의 무자 공안(화두0을 참구하며, 밤낮으로 이 문제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마치 벌건 쇳덩어리를 삼키고 있는 것처럼 뱉으려야 뱉을 수도 없이 집중하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알음알이가 깨끗이 씻겨내리고, 시간이 지남과 더불어 차츰 자기와 바깥세계의 구분도 없어져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대혜종고 선사(1089-1163)의 간화선을 계승한 무문혜개는 무문관에서 ‘묘한 깨찰음은 철저히 마음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는 체험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은 직후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를 이루었지만 자기의 신령스러운 마음 광명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삼계의 불집 속에서 나고 죽고 하는 큰 꿈을 깨지 못하고서, 긴 겁이 지나도록 갖은 고통과 쓴맛을 다 받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처럼 수행 과정이 만만치 않은 화두선은 눈 밟은 선지식(선사)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성과를 얻기 힘든 공부로 알려져 있다. 염불이나 경전 공부에는 쉽게 다가서는 불자들도 화두선은 쉽게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안국선원의 화두선 열기는 더욱 놀랍다. 한국선원은 전국에 세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선방의 수좌 승려들과 다름 없이 안거를 나고 있다. 이들은 겨우내 새벽, 잦, 밤 시간등 자신의 수행 시간을 정해놓고 정진한다.

서울 안국선원 법회 때면 4층 대법당에서 700여 명이 빼곡히 앉아 참선 정진하는 장관을 엿볼 수 있다. 하나같이 화두선을 하고 있다.

그토록 어렵다는 화두를 이들이 어떻게 들 수 있을까? 안국선원 수련생들은 모두 신참자 특별 과정을 거쳐 화두선을 시작하게 된다. 좌선 자세마저 서툰 초보들은 수불 스님의 특별 지도에 따라 ‘이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화두 삼아 참구한다. 참구를 통해 변과가 나타나야 위층 수련생들과 같이 법회나 안거에 참가할 수 있다.

하루종일 손가락과 발가락과 온몸을 움직이면서도 이 몸을 움직이는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평생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를 놓고 의심에 의심을 더해간다. 그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절실하게 따져보지 못한 근본적인 의문을 놓고 온종일 몰입하게 하는 게 수불 스님의 탁월한 방편력이다.

그렇게 24시간을 보낸 신참자들의 반으은 제각각이다. 한 오십대 여성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같은 또래의 또 다른 여성은 “온몸이 떨린다.고 했댜. 반면에 사십대의 하 여셩은 ‘황금빛이 나를 감싸 안는다”고 했다. 이십대의 한 여성도 ‘그토록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 평안해져버려 머리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며 상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수불 스님은 그들이 어떤 현상을 체험했든 상관 하지 않은 채, 그순간에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겼는지 물었다.

화두를 놓칠 때마다 “이 뭐꼬?”라며 다시 자신에게 묻는다는 한 육심대거사에게 채찍이 가해진다.

“‘이 뭐꼬’하는 질문을 되뇌는 건 화두선이 아니다. 이미 질문은 내가 던졌다. 여러분은 답만 찾으면 된다. 질문만 반복하고 있을 셈인가. 질문은 잊어버리고 오직 답만을 찾아가라. 지금 답을 몰라 답답한 것이 아닌가. 그 답답한 의심이 의단이다. 오직 그 답답한 마음만을 밀고 나가라.”

어떤 경계(체험)가 오더라도 현혹되지 말고, 본성을 몰라 답답한 그 마음만을 밀고 나가라는 경책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붙들고 있던 집착과 괴로움도 화두 의심에만 몰입하는 사이 어느새 사리지고 없다. 화두에 잠긴 초심자들의 눈에선 수억 겹 동안의 ‘무명’과 업이 녹아내리는 듯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번뇌와 업을 불태우는 의심의 불기둥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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