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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민족의 혼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쌀은 우리나라 경제의 비교수단이었다. 머슴의 일 년 새경이나 논과 밭의 가격을 쌀가마니 수로 계산하였다. 학교등록금도 마찬가지고, 하숙비도 그랬다. 이렇게 쌀은 화폐였으며 경제의 단위였다. 그 때는 어지간히 잘 사는 집이 아니고는 쌀밥을 먹기가 어려웠다. ‘열흘 굶어 남의 집 담장 넘지 않을 사람 없다’는 속담도 있었다. 쌀 대신 보리라도 넉넉하면 좋으련만 국민이 먹어야 할 쌀과 보리의 자급률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따라서 정부도 식량자급 대책이 정책의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들어서 정부는 쌀 증산정책과 함께 쌀 소비절약운동을 펼쳤다. 경지정리, 수자원 개발,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 종자나 농기계보급, 쌀 수매가격보전제 등을 시행하여 증산에 힘썼다. 한편으로는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는 쌀 소비절약운동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보릿고개라는 말이 옛이야기가 될 만큼 쌀을 자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쌀이 2010년에 이르러 그 생산량이 104.5%로 정점을 찍더니 그 이후도 계속 풍년이 들어 이제는 재고가 쌓이게 되었다. 따라서 지역의 각 농협들은 수매값 낮추기 경쟁에 나섰고 수탁수매제1)를 시행하겠다고 할 정도다. 농민들은 수매가격을 보장하고 매취수매2)에 나서라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쌀농사는 여든 여덟 번 손이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쌀미米자를 파자하면 八十八이 되는데서 유래한 말이겠지만 그만큼 수많은 노고가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60년대 이전에는 논이 열 마지기(2천평)만 돼도 머슴을 두고 살았고 쌀값이 높다보니 부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즘에는 모를 심는 데는 이앙기, 수확하는 데는 콤바인, 건조하는 데는 건조저장시설이 대신하다보니 광작廣作과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다. 반면에 쌀값이 낮아지면서 만평이상은 돼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한다. 품종의 꾸준한 개발로 병충해와 풍수해에 강한 벼가 보급되었다. 또 저 농약 농법과 헬기를 이용한 방제 등이 쌀의 증산을 가져왔다. 각국과의 FTA로 인하여 쌀 수입량 또한 날로 늘고 있으니 이제 쌀의 과잉은 정책당국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쌀 과잉의 결정적 요소에는 줄어든 1인당 쌀 소비량도 한 몫 한다. 1970년대는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36킬로에서 2015년 현재 65킬로 이하로 떨어졌다. 국민의 영양보급에 관한 정책이 육류와 우유 등 축산물공급에 비중을 둔 결과다. 축산물 생산액이 식량작물 생산액을 앞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요즘 외식산업을 보면 고기를 구워 먹고 밥은 냉면, 소면으로 대체하거나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국민의 영양보급은 못 먹어 허기졌던 시대를 넘어 비만, 고혈압, 당뇨 등 현대병과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살과 사투를 벌이는 진풍경으로부터 시야를 넓혀보면 지구촌 어딘가에서 하루에도 십만 명이상이 굶어죽고 있단다. 신자유주의라는 시장근본주의가 잉태한 결과이긴 하나 식량으로서의 쌀은 그래서 소중하다. 북한주민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현실이다. 북한 동포는 ‘쌀밥에 고깃국’이 소원 이라는데 통일을 목전에 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우리는 쌀을 지키는 일에 추호의 게으름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미국, 태국, 중국 등 쌀값이 낮은 지역에서 사다 먹으면 될 것을 왜 비싸게 농사를 짓느냐고 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식량이 무기화 된다면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벼농사의 비교역적 기능을 모르는 소치이다. 논에 벼를 심지 않고 방치하면 산이 되기는 쉬우나 이를 논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또 논에 물을 가두는 일은 국토를 기름지게 할 뿐 아니라 수자원 확보, 공기정화, 풍치제공 등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이 주식이었던 시대에는 현대병이 오늘과 비교하면 극히 적었었다. 쌀밥을 하루 세끼 먹어 온 사람 중에 장수하고 있는 노인을 많이 본다. 정정한 기운을 뜻하는 정기精氣라는 단어를 보더라도 쌀미米변이 모두 들어가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성 싶다.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내가 큰며느리를 맞으면서 아침밥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첫 번째 조건으로 삼았던 것은 우연이나 아집이 아니었다. 쌀이 민족의 얼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며느리는 할머니가 계신 집안에서 밥을 지어 먹는 일을 잘 배워왔다. 그 덕분에 내 손자 손녀들이 밥과 김치를 잘 먹는 것을 보면 여간 기쁘지 않다. ‘논에 물대는 소리와 자식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만큼 듣기 좋은 것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감긴다.

나는 어려서부터 쌀 한 톨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고 자랐다. 불과 오십년이 지난 지금은 식당에서 남긴 밥을 재활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밥 한 그릇을 짓는데 소비되는 쌀값이 이백 원에 불과하니 껌 값보다도 싸다.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때가되면 논에 나가 모심고 여든 여덟 번 손길을 보내는 농부야말로 이 시대 장인이다. 국가가 나서서 이들 농부에게 연금을 지급해 주는 정치지도자가 나오는 날을 기대해 본다.

올 가을, 극심한 가뭄에도 벼농사만큼은 풍년이 들어 들녘마다 콤바인 작업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황금 들녘이 주는 풍요의 상징을 넘어 풍년기근豊年饑饉3)을 걱정하게 되지만 남북이 통일되어 북녘의 동포들이 쌀밥을 먹으면서 환희를 맞이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쌀은 우리민족의 혼이기 때문이다.

2015. 9. 30

1) 수탁수매제: 농협이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수매하면서 판매 후 수수료를 떼고 정산하 는 판매방식으로 정부가 농협에 장려하는 제도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제도임.
2) 매취수매: 농민에게서 일정가격으로 사들여 파는 방식이므로 농협이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는 수매가격을 낮춰야하고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농협의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장려하지 않는 제도임.
3) 풍년기근: 농산물은 조금만 남아도 가격이 폭락하고, 조금만 부족해도 값이 폭등하는 가격의 비 탄력성을 보이는데 풍년이 들면 가격이 폭락하여 궁핍하게 된다

운명의 농촌사랑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흙을 가까이 해야 건강하게 산다는 신념 하나를 붙들고 농촌을 지킨다.

촌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만 17세가 되던 해 농협에 몸담았다. 9년이라는 서기생활은 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내근과 출장, 당직, 야근, 휴일반납이라는 익숙한 단어에 매몰되어 오히
려 집에 우두커니 있으면 불안했던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주5일 근무제와 비교하면 노동의 지옥을 산 것인데 그런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상무로 승진하는 초시初試에 거뜬히 합격했다. 당시 일선 시군농협에서 합격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의기충천해서 무서울 것이 없던 만 29세에 S농협의 전무로 부임했다. 지역농협육성책으로 시군농협 직원을 선발해서 파견했던 첫 번째 케이스였다. 앞으로는 회원농협이 농협조직의 최 일선에서 중심이 될 것이라는 소신이 응모하게 된 동기였다. 초창기 지역농협의 운영체계를
갖추는데 기여했고 취임 2년차 종합업적평가에서 전국 천사백여 농협 중 2위를 차지하는 등 보람도 컸다. 사실상 최우수였는데 1위의 농협이 사슴피를 가져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던 H선
배의 솔직한 고백이 평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는 메아리로 남는다. 우수상으로 주어지는 승진, 승급, 교육기회 부여 등 포상은 모두 직원들에게 부여했다, 당시 모셨던 조합장께서 도광양덕 韜光養德1)을 실천한 책임자라고 칭찬해 주신 것이 더 큰 보상이었다. 농민조합원과의 최 일선 접점에서 지역 특산물인 쪽파를 공동수집, 운반하여 서울에 직원 상주사무실을 두고 판매활동을 펼쳤던 일들이 주마등같다.

협동조합 원칙을 실천에 옮기면서 격어야 했던 이론과 실제의 경험은 나의 농협 생활에 큰 자산이 되어갔다. 그러구러 2년이 경과하자 순환보직 인사원칙 때문에 군단위에서의 이동이 문제로 대두됐다. 회원조합으로의 전출 또는 중앙회로의 복귀라는 진로선택의 기회가 주어졌
다. 복귀를 선택한 때는 종전의 중앙회, 시군조합, 단위조합이 중앙회와 단위조합이라는 2단계 체제로 바뀐 후였다. 2년간의 중앙회oo군지부 과장을 거쳐 지역본부로 전출하면서 과장대리 직함이 주어졌으니 신분이 급전직하한 것이었다.

40대에 들어 농협직원으로서 영농을 해 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농업인의 애로를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소득작목을 가꿔서 주변의 다른 농민이 따라하는 시범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남겨놓았던 소나무 밭을 개간하기에 이르렀다. 사과를 심고 주말마다 일을
해 보았지만 기술부족, 경험부족, 노동력 부족으로 결국엔 폐원에 이르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퇴직 후를 생각해서 어떤 작목을 선택해야 할지를 연구한 끝에 옻나무, 헛개나무 등을 재배 했지만 소득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월급쟁이는 한 우물만 파야한다는 교훈과 함께 농사가 어려우니 만치 농업인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느껴졌다.

농업과 농촌문제는 머리에서 따나질 않았다. 농촌인력의 고령화에 따라 앞으로의 복지가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지를 공부했다.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이수하면서 ‘농촌공간의 생산
복지적 활용방안’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최근 농촌학교가 폐교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농촌이 공동화 돼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모교 초등학교의 올해 입학생이 23명이란다. 워낙은 농촌에 젊은 사람 구경이 어렵고 간혹 다문화 가족이 보일 뿐이니 그럴 밖에… 비워지는 교실을 요양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많은 돈을 들여서 새로 짓기 보다는 약간의 보수로 요양원을 병설하면 좋겠다. 요양보험이 지원하고 지역농협이 운영하는 모델을 도입하면 노소가 한 곳에서 어울려지면서 농협이 제일을 하는 결과가 된다.

직장을 명예 퇴직할 무렵 거처를 고향으로 한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어느 선배와 같이 본인의 생각일 뿐 부인이 따라와 주지 않아 귀농에 실패했다는 얘기는 나와는 무관한 얘기였다. 고맙게도 아내는 순순히 따라 와 줬고 블랙초코베리(일명 아로니아)를 심어 한창 수확하고 있다. 이제는 아내 혼자서도 밭에 나가 일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고마움을 느낀다.
친환경으로 재배해서 도시의 손자녀들에게 보내주는 마음과 그들이 농촌을 고향삼아 나다니
는 모습을 보면서 농도불이農都不二2)의 전형이라는 보람을 느낀다.

농업학교에서 축산을 전공했으면서 축산분야에 근무해 본 적도, 축산업을 해 본 경험도 없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최근 돈분을 이용한 완전발효퇴비 생산기술을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돈분을 폐기물로 취급하고 이에 정부의 정책이 집중돼 온 것은 크게 잘 못임을 역설한다. 일반 농업은 자본재인 토양이 좋아야 하는데 토양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양
질의 퇴비가 꼭 필요하다. 그 퇴비의 원료는 돈분이 가장 좋고 더구나 수분이 많아야 한다. 돈사에서부터 물을 많이 씀으로서 냄새를 잡아내는 기능을 하니 청소수를 포함한 돈분뇨는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내용으로 2016년에 저술한 ‘돈 버는 돈분’ 책이 우리나라 양돈업과 농업발전에 기여되리라고 믿는다.

오늘날 농업과 농촌은 희망이 없다고들 하지만 지난해 농수산대학 졸업생의 일부는 억대의 소득을 올린다니 농업이 희망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고 생명산업으로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조기대선이 치러지는 정유년 5월을 기대한다.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추진하는 농가당 소득 5천만원 목표를 달성하고 농촌공간을 생산적 복 지의 현장으로 가꾸기 위해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유능한 농림장관이 탄생하면 좋겠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업학교를 나와 농협에 몸담은 후 농촌으로 복귀한 것은 나의 운명이다. 흙과 가까이 하면 건강에 유익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 즐겁다. 농촌이 복지의 아가페
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농촌을 사랑해야지..

1) 도광양덕: 잘 한 일은 감추고 덕을 기른다는 채근담구
2) 농도불이: 농촌과 도시는 둘이 아니라는 개념으로 농협이 펼친 농촌사랑운동 구호
(2017. 03. 15)

농협의 틀을 바꾸자

농협은 50여 년 동안 신뢰와 성공의 신화를 이룬 단체다. 순수 농업인의 출자금과 경영이익으로 자본을 구성하여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해온 결과 IMF도 거뜬히 이겨냈다. 지금도 우리나라 농협의 성공사례를 배우고자 세계 여러 나라가 인력을 파견해 오고 있을 정도라니 한국농협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농협은 시대상황에 맞도록 바꾸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농협이 신용사업에 열중하는 데 비해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주는 데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농협임직원들은 마치 상업은행의 금융인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고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일선조합장이 뭐 길래 선거과정에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수억 원의 선거자금을 써야 하는가. 그 뿐이 아니다. 당선 후의 극심한 편 가르기와 지역간, 계층간, 혈연 갈등은 잔치 후에 나뒹구는 쓰레기보다 더 큰 문제다. 농민 조합원 숫자는 감소하고 소득 수준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데다 지금과 같은 소규모 조합은 결국 농민 조합원의 부담으로 이어지는데 언제까지 이대로 유지 할 것인가? 회원농협 조직과 조합장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첫째, 조합을 경제권 중심으로 광역화廣域化해야 한다. 현재 중앙회나 정부가 내 걸고 있는 자율합병 원칙 하에서는 합병 또는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렵사리 당선의 영광을 거머쥔 현직조합장이 기득권을 버리고, 또 후일에 조합을 팔아먹었다는 역사를 남기면서 합병이라는 모험을 하겠는가? 조합의 합병은 법적인 뒷받침 하에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업은행도 대형화로 짝짓기를 하는데 하물며 영세한 조합들이 저마다 점포를 차리고 앉아 있으니 그 비효율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지역농협을 시.군단위로 통합하고 조합원의 이용에 편리하도록 읍면단위에 지점을 운영하면 된다. 이는 서울의 경우나, 군 전체를 1~2개 조합으로 통합해서 효율을 높이고 있는 전국의 많은 사례에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둘째, 조합장은 명예직名譽職으로 해야 한다. 조합을 대표할 뿐 실무는 상임이사 또는 지점장(상무)이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실비는 판상하되 무보수로 해야 한다. 과거 군조합장이 그랬고 또 명예직에 머물도록 해야 조합장 선거의 혼탁을 막을 수 있다. 회원농협은 조합원이 주인이고 그 대표가 조합장인데 전문 경영인이라는 전무와 같은 수준의 급여를 줘야 한다는 것은 주인과 직원의 개념을 호도하는 잘못된 일이다. 농협이 초창기에는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이었으나 지금은 전무의 급여도 연봉 1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합장과 직원의 고임금체계는 조합대출 금리의 인상을 부르고 경영 압박의 요인일 수밖에 없다. 지역 타 기관의 임직원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급여구조가 조합원의 원성을 사고 있다. 50여년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농협 또는 공공기관을 퇴직(60세 전후)하여 많은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가진 인재들이 사장되고 있다. 농촌의 노령화가 심각한 상황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등용으로 상임이사를 선발하면 된다. 연봉 5천만 원 미만으로 가능하고 상임이사에게 경영 전반을 맡아 하도록 하되, 대외적으로 조합을 대표하는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함으로써 고임금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상임이사는 2년 마다 신임을 받도록 운영하되 경영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

셋째, 조합장 선거를 이사회 호선과 총회인준의 간선제間選制로 바꿔야 한다. 중앙회장 선거를 직선에서 대의원회 간선제으로 바꿨는데 조합이라고 직선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직선제 하에서 조합장 당선자는 취임 때부터 차기를 염두에 두는 조직 관리로 여념이 없다. 조합원들의 의식 속에는 그 놈이 그 놈이라면서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빈번하니 직선제의 폐단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지역도 농협 선거과정에 수억 원의 선거자금을 뿌렸다는 선거부정 소식이 일간신문에 보도되고 사직당국에 의해 고발조치 되어 재선거를 해야 했다. 그 낭비와 소모적 논쟁이 얼마나 컸는가. 이는 빙산의 일각이고 지역의 각종 선거가 거의 모두 이런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간선제나 직선제 모두가 각기 장단점이 있겠으나 조합장의 보수 또는 대우가 적으면 부정한 선거로 조합장이 되고자 하는 분위기도 훨씬 잦아들 것이다.

넷째, 공명선거를 위한 관리의 강화다. 조합장 보수를 무보수로 하면 공명선거의 출발점이 되겠지만,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권위에 기초한 조합장 선거가 혼탁이 아주 없지 않을 것이다. 현행 선관위選管委 위탁은 공명성 확보라는 외부적인 요청에 의해서 시행되어 왔으나 아무 효력을 기대 할 수 없다. 공무원인 관계로 근무시간만의 감시에는 한계가 있다. 또 돈을 수수하는 경우 쌍벌제이기 때문에 노출되기 어려운 맹점을 이용하여 유권자가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거나 후보자가 금품을 살포하는 사례마저 있다. 종전대로 농협자체 선거관리제도를 운용하거나 합동관리 방안을 도입하되 출마자가 선임하는 기동단속반을 운용하는 방안이 검토 되어야 한다. 어떤 선거든지 돈이 당락을 좌우하는 추악한 제도로는 사회의 성장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농민의 자주조직인 농협의 선거가 공명정대하게 치러져서 협동조합의식이 뚜렷하고 조합원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일의 일차적 책임은 전적으로 조합원의 몫이다

우리나라 농협은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낙후된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정부주도로 구 농협과 금융조합을 합병하여 중앙회를 먼저 만들었다. 중앙회는 회원농협을 이.동단위에서 읍.면 단위로 합병해나가면서 상호금융제도를 도입하여 농촌의 고리사채1)를 없앴다. 초창기 농협은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했던 과정을 거쳐 그나마 돈 장사로 인해서 수지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농민의 자주조직인 농협중앙회는 종합농협의 장점을 살려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한편 전국 농협의 역량을 결집하여 농민의 권익을 대변해 오면서 경영 여력을 회원농협의 자립경영을 돕는데 최선을 다해 왔다, 회원농협들은 농업과 농민의 최 일선에서 농업인의 편익을 도모하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중앙회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중도하차한 일이 있었다. 농민단체들은 농협이 돈 장사에만 열중이라며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므로 2012년 농협중앙회는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발족하게 된다. 금융지주에 농협은행을 두어 일선에서 보면 NH농협은행 점포는 보이는데 농협중앙회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됐거나 중앙회조직은 근간이 바뀌었음에도 회원농협의 문제는 장막에 가려 있어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실상 농업인이나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역농협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개혁이 절실한 실정이다.

어떤 제도든지 동전의 앞뒤가 있듯이 장단점이 있음은 인정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성공한 모델로 한국농협을 배우러 오는 터에 우리농협은 농업인의 편익증진과 국민의 먹거리 생산, 그리고 국가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 50년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농업인의 편익을 증진하는 진정한 농협으로 거듭나기 위한 이 같은 노력이 농협의 자주적 결정에만 맡겨서는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이 나서서, 또 농민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농협의 변화를 촉진하고, 주인인 조합원의 의식에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2015, 12. 20

1) 고리사채高利私債: 60년대 전후 농촌에는 은행이 없었고 개인간의 대차거래가 많았는데 그 금리가 높아서 쌀 한 가마니를 빌리면 다음해 두 가마니를 갚아야하는 곱장리도 있었다.

수구초심 首丘初心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구절산 밑 작은 농촌마을이다. 어렸을 때만 해도 백여 집이 윗 거문들, 아랫 검은들로 나뉘어 이웃사촌들로 어울려 살았다. 사십여 년을 나가 살다가 환갑의 나이가 되어 돌아온 지금 가구 수는 절반 가까이로 줄었는데 산에 음택을 찾아든 망객은 부지기수로 늘었다.

구절산은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 성북리, 백석리에 걸쳐 있는 해발 백오십 미터에 불과한 낮은 산이다. ‘산이 아홉 마디를 이루었다’하여 구절산九節山, ‘새가 깃들이는 형국’이라 하여 봉서산鳳棲山,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산’ 이라 하여 봉소산鳳巢山이라고도 부른다. 비룡산천의 천하 명당터인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가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농촌이 어디를 가나 그렇다지만 산 사람은 하나 둘 떠나는데도 아산만일대가 공업지대화 되면서 유택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것은 아마도 이런 속설의 영향이 큰 때문이리라.

당진의 진산인 아미산이 내 마을을 향하여 뻗어 내린 산이 구절산이다. 가야산 줄기라고도 하는데 정상에만 올라가도 서해대교 건너 평택, 천안, 온양, 예산, 홍성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진이 낮은 구릉과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서다. 우순풍조하고 기름진 예당평야에서 세곡미를 실어 나르던 포구가 개발붐을 타고 오늘의 아산만을 형성했으니 이를 두고 상전벽해라 하지 않는가.

거의 매일 새벽이면 집을 나서 구절산을 돌아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대전에서 생활할 때 보문산이 자기에게는 보물산이라던 선배의 마음이 나에게 전염되어 구절산은 나의 가슴에 꽈리를 틀어 앉아 있다. 산 밑에서 올려다보면 북한의 백두산을 비롯한 압록강 두만강을 보는 듯하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남한반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 온 것은 직장 퇴직 후 칩거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나서였다. 흉선암 수술을 받고 고향에 낙향하여 항암제로 인한 탈모현상을 벙거지로 감싼 채 산을 벗 삼아 투병했다.

봄에는 당진천을 따라 피는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여름에는 당진 항에서 불어 보내는 바닷바람이 있어 좋다. 어떤 산이라도 그렇지만 가을, 겨울은 소나무 사이사이 부는 바람이 청량하다가도 눈을 잔득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은 어쩌다 선경에 든 기분을 자아낸다. 만사제폐하고 산광임성山光林聲속에 조용히 앉아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감히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속세에 찌든 때를 벗기란 쉽지 않은 터 농군의 흉내를 내 본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병신자식이 효도 한다’는 속담을 떠 올리면서 쓴 웃음을 지어 본다. 증조부께서 물려주신 산을 그냥 내버려 두고 도시생활로 일관했어야 했다. 퇴직 후 생산적인 일터를 장만하고 현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못 다한 농촌운동, 농협운동을 하다가 죽는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십여 년 전 산을 밭으로 개간했다. 낙향한지 십여 년이 돼가지만 시기 따라 경운하고, 씨 뿌리고 거두고 포장해서 출하하는 일이 힘들고 채산성이 낮아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곱씹지만 농촌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못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염되지 않은 작물을 손수 가꿔서 가족 간에 나누어 먹는다는 수준에서 만족을 얻고 있다. 내가 있어 조상 산소관리와 제사 모시는 일이 나름 이어지니 굽은 나무를 자처한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최근에 종중이 위탁한 명의신탁도 소송을 통해서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조상께 면목은 서게 되었다. 지금은 농촌에 관심이 적은 아이들도 나이 들면 이 아비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자위를 해 본다

고전 예기에 ‘호사정구수 인야狐死正丘首 仁也’ 라는 구절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는 제가 태어난 구릉에 머리를 바르게 하는데 이를 인이라 한다.’ 는 말에서 유래한 수구초심은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쓰인다. 고향을 소중히 여기고 죽어서 뼈를 묻을 곳이라는 생각은 떠나질 않는다.

그나마 우리 아이들은 연중 십여 차례는 부모의 고향을 다녀가는 셈이다. 비농업분야에 종사하면서 농업, 농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모습에 희망을 가져 본다. 전 국민이 5도都2촌村1)을 실천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농부를 이해하면서 우리농산물을 애용하는 국민운동이 절실하지 싶다. 우리 산업의 뿌리는 농업이고 우리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임에랴

1) 5도2촌: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농촌에서 보내자는 농촌 사랑운동을 이르는 말

상생의 농협직원

지구상의 수많은 협동조합 중에 한국 농협의 발전상은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 시원은 군사정부가 낙후한 농촌을 살리는데 농협을 이용했는데 중앙회부터 만드는 하향식조직이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 운동을 주도한 것이 농협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초창기 새마을 운동본부를 농협이 운영했고 도시에서부터 농촌 도서벽지島嶼僻地까지 촘촘하게 조직된 농협이 있었기에 새마을 운동도 성공할 수 있었다.

박정희정부가 농협중앙회를 정책의 파트너로 삼아 농촌을 개발해 나가면서 읍면단위 농협이 생겼고, 전두환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조합이 중앙회로 일원화되면서 중앙회와 회원조합이라는 2단계 농협으로 재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역사를 모르는 혹자는 중앙회는 회원농협의 피를 빨아먹는 조직이라며 비판하는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는 안도현의 패러디가 떠 오른다. ‘중앙회 직원 함부로 욕하지 말라’

나는 고등학교를 69년도에 나왔다. 여섯 남매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11살 때 돌아가셨으니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취직을 해야 했다. 신문배달, 가정교사를 전전하며 공부밖에 몰랐다. 졸업 후 시험을 치러서 사회에 나와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영일寧日이 없었다. 장학금을 놓치면 안 되니 공부를 위한 공부를 했다. 2학년 때부터 농협시험을 준비했는데 내 인생의 멘토가 돼 주신 상호 형이 그 해 합격을 했다. 3학년이 돼서 그 형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에게 최고의 음식은 짜장면이다. 선배가 사주는 음식을 게 눈 감추듯 했던 추억, 공부했던 자료들을 얻어 와서 방향을 잡았던 게 학년말 오백여명이 재학한 학내에서 유일하게 합격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추억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다.

상호 형은 일찌기 중앙회 본부로 진출해서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시골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통신대학이 생겨서 나름 대학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어쩌다 중앙회 본부를 들를 기회가 있어 형을 찾아가 보면 책상에 가득한 서적들로 공부를 하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되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늘상 쉴 시간이 없던 일선창구를 비교하면서 나도 중앙회에 대한 불만이 없지 않았다. 해마다 승진고시에서 본부직원들이 대부분 합격하고 일선 시군조합에서는 간혹 합격자가 나오는 현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입사한지 9년이 경과해야 승진고시 응시 자격이 주어졌는데 시험 운이 있어서 78년 첫해에 합격했다. 상호 형을 통해서 본부로 전출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당시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서울생활은 못할 것 같아 일선에서 묻혀 56세에 명예퇴직을 했으니 나는 참 주변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 본부에서 감사가 나오면 일선에도 이런 직원이 있느냐며 내가 한 일을 평가해주는 감사관을 여럿 보았는데 야산개발자금이 대량으로 연체되어 군수에게 대위변제독촉 문서를 생산했던 사건이 전국의 모범사례가 되었던 일화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출장을 나왔던감사관과 의형제를 맺기도 하면서 교감을 하다 보니 본부직원들의 애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부부처, 국회, 감사원, 법원 등 정부기관들과 정책을 협의 결정해야 하니 공부하지 않으면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 세계에 왜 학연, 지연, 직연들이 없겠나? 어쩌다 승진이라도 할라치면 전국 어디라도 가서 두 세 해를 독수공방해야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어떤 때 마주하는 공문은 잠자는 나를 깨우기도 했다. 나는 남이 만든 공문도 소화가 안 되는데 생산한 직원은 얼마나 고심하고 이 문서를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중앙 본부직원들의 실력과 애환을 이해하곤 했다. 그 뿐인가 국회가 열리면 며칠 몇 달을 밤을 새워 대기하고 대형행사를 치러내는 본부직원들의 몸부림은 일선에서 잠자고 있던 나에게 각성제이자 최면제였다. 저들의 머리가 있고 수고가 있으므로 내가 편다는 생각으로 늘 본부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내가 농협에 입사할 때는 출자금이 왜 필요한지. 일선 농협이 왜 이.동단위에서 읍.면단위로의 합병이 필요한지를, 바란스(*대차대조표)의 원리가 무언지 잘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했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보리 한 말 벼 한 가마니 출자모집을 함께 다녔고, 엉성한 사무실에서 전표를 만드는 일부터 장부조직까지 면단위 직원들과 기거하면서 건물의 기초를 닦듯이 했다. 당시 조합장과 참사는 월급도 없이 수년을 고생만 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중앙회가 상호금융제도를 도입하면서 일선농협이 모습을 갖춰갔다. 중앙회가 기존의 전산망을 이용하여 전국을 네트웍하고 상품개발과 홍보를 해나가므로 농업인에게 절박한 금융편의를 제공할 수 있었다. 농촌에 만연했던 고리채를 없애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농협은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없는 상생의 기관이지만 조합원이 조합존립의 근거라면 급격한 도시화로 조합원이 없는 대도시 조합은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건가, 고령화한 농촌농협도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면 조합원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은 피할 수 없다. 중앙회, 도시농협, 농촌농협 직원들이 상생하면서 농업경제를 이끌어야 하는 소이所以이다.

같은 모양의 뱃지를 차고 있다고 해서 일선농협직원이 중앙회 직원의 대우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채용조건이 다르고 근무조건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회원농협직원이라고 해서 과거 생각만하는 중앙회 직원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회원농협도 자생력을 갖췄고 그들이 있으므로 중앙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패러다임은 상생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하는 같이의 가치가 100년의 역사를 인도할 것이다.

* 대차대조표: 기업의 자산(차변)을 부채와 자본(대변)으로 나누어 일정시점의 재무상태를 나타내는 표

농협의 틀을 바꾸자(사업)

농협은 종합농협의 형태를 띄고 있다. 중앙회가 신경분리信經分離되어 신용사업과 경제사
업이 지주사형태로 있더라도 여전히 중앙회의 산하조직이고, 일선의 회원조합은 상호금융, 구매, 판매, 가공, 이용, 마트 등 백화점식 경영을 하고 있다.

회원농협의 상호금융은 조달자금인 예금이 운용자금인 대출금보다 많아서 돈 장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 여파가 농촌에서도 재현되고 있으니 자금을 팔지 않으면 운용수익이 생길 수 없다. 시중은행보다 이자율을 크게 높여 받을 수 없다보니 비조합원에 대한 고액의 담보대출이 조합원에 대한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훨씬 낮아 조합원(농민)은 뒷전으로 내 몰리는 형국이다.

농협 본연의 사업이라는 판매사엽은 어떤가. 농협초창기 구호는 ‘공동생산 공동판매’였다.
이를 통해서 생산비용과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품질을 높여서 제 값을 받자는 취지였는데 물론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생각이나 의지만큼 쉽지 않았다. 개인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작업이 이론상 괴리가 있었고 품질의 불균형, 유통시스템의 낙후성, 농산물의 특성에 기인하는 문제들로 공동판매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쌀만은 농협과 정부의 피나는 노력으로 품질향상과 수매저장, 유통 등에 있어 농협이 판매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 나머지 농산물들은 아직도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그러는 사이 농촌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젊은이들이 농사지을 농토를 버리고 도시의 공장으로 떠나고 있으니 비어만 가는 농촌을 어찌한단 말인가

보다 못해 중앙회가 일선농협이 농작업을 대신해 줄 것을 조건으로 무이자자금을 줘서 농기계 공동이용사업을 펼치도록 했다. 수지에 목을 맨 일선 농협들은 약삭빠르게 그 자금을 영농회장 또는 임원들에게 나눠주고 이웃의 농작업을 도와주라고 했지만 제일하기도 바쁜 이들이 이웃을 챙길 겨를이 없고 누구에게 위탁했다는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일부에게만 특혜를 주는 또 다른 부조리를 낳고 있다. 농작업은 힘이 들다보니 농기계에 의지해야 하는데 소규모 영농에서는 농기계를 모두 갖출 수 없어 공동이용만이 살 길인데도 실정은 딴전을 부리고 있다.

애써 가꾼 농산물은 팔아야 돈이 되는데 일선 자치단체와 농협이 로컬푸드라는 이름으로 하나로마트에 코너를 마련하고 있지만 지역에서 소비하는 물량은 극히 적은 양이고 서울 등 대도시로 보낼 수밖에 없다. 7, 8십 년대에는 산지농협이 서울 등 대도시에 매장을 내고 직원을 파견해서 팔아주는 노력들을 했지만 효율이 떨어지고 도시상인과의 경쟁에서 뒤지다 보니 대부분 철수하고 계통농협의 매장 또는 공판장에 출하하는 게 농산물 유통의 전부다.
정부는 농산물유통을 생산농민이나 도시상인에게 떠 넘겨서는 안 된다. 국민의 먹거리 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과 비교될 수 없는 중요한 산업이니 만큼 냉장 냉동시스템을 갖추는 운송. 저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선진국 농업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산지에서 잘 다듬은 신선 농산물이 소비자 가정까지 가는 과정에 선도가 유지돼야 하는 특성을 인식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농민은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그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급조절도 정부가 할 일이다. 낙농의 경우 원유原乳생산 쿼터제로 수매가격을 유지시켜주니
까 농가가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쌀부터 시행할 수 있는데도 수탁 수매하
라며 농협끼리 경쟁적으로 값을 낮추게 하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그렇다고 농협이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건가? 인근의 모 농협은 농민이 생산한 쌀을 모두 사들여 떡으로 가공해서 전국에 유통시키고 있다. 그 조합의 조합장은 종신토록 하고 있다. 농민이 원하는 바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바꿀 이유가 없다. 그 뿐인가 또 다른 농협에서는 소득작목을 입식하고 그 생산물을 매일 자체차량으로 농가를 순회, 수집해서 팔아주니 제 할 일을 다하는데 조합원 으로서는 농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한다.

대도시 지역농협은 각성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도시에 농민이 몇 명이 있을까. 농민이 없는 농협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도시속의 농협은행이라면 농촌농협을 돕는 일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된다. 농촌형 농협이 겪는 애로 이상의 위기를 실감하고 협동조합간 협동의 원칙에 충실해서 농산물을 팔아주며 도농간 교류사업을 활성화 해야 한다.

멋 모르고 농사나 짓는다고 귀촌해서 막막해 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 논 밭 갈아주고, 농산물 팔아 주며, 언제라도 돈이 필요하다면 너무나 편리한 자금융통을 해주는 그런 농협이 돼 줄 수 없을까? 농촌에서 자라고 이제껏 농협을 육성해 온 원로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이제 내 노후를 책임지는 농협이 돼 줄 수 없을까? 창립 50년을 넘어 향후 50년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농협에 도전과 응전은 무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FTA가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몰고 가는 지금 농협에는 위기감이 있기나 한 걸까? 농협인들에게 모 기업총수가 남긴 말, ‘할 일은 많고 세계는 넓다’ 고 한 말을 깊이 새겨서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분발이 있어야 한다.

농협의 틀을 바꾸자(경영)

기업은 살아 숨 쉬는 생물과도 같다. 기업은 인적자원에 의해서 명멸明滅할 수도 있는 그런 단체이다. 인적자원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함에도 그 가치를 화폐단위로 환산해서 자산에 반영하는 제도는 아직 없다. 특히나 조합을 대표하고 운영의 전 책임을 맡고 있는 조합장을 어떤인물로 뽑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합장을 잘 뽑아야

한국농협은 50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성장을 했다. 정부가 농협조합장 선거를 통해서 지방자치제도를 실험해 왔다. 기초의회가 생기기 전인 70년대부터 조합장을 선거에 의해서 선출했다. 그것이 대의원에 의한 간선제와 전 조합원에 의한 직선제를 오가면서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개인이 가게를 차려서 경영하다가 물량이 많아지면 직원을 두게 되고, 직원이 많아지면 법인을 만들고, 주식을 공개하고,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국내 유수기업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도 모두 그런 과정들을 겪는다.

농협은 중앙회가 전문경영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중앙회장은 농민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문경영인 채용부터가 그의 권한 하에 있으니 과히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할 수 있다. 지역농협, 업종농협 등 회원농협도 예수금이 조兆 단위를 상회하는 농협이 있다. 소기업을 넘어 중. 대기업을 방불케 할 만큼 규모로 커졌다. 그런데도 조합원이 조합원 중에서 조합장을 뽑아주면 그 조합장이 전권을 가지고 경영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마땅히 상당한 경영능력과 경험과 책임의식이 갖춰진 전문경영자에게 맡겨져야 한다. 경영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무, 상무제도를 두고 있으나 연공서열年功序列로 올라가는 자리가 전문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일정규모가 넘는 조합이 전무를 없애고 상임이사를 두고 있지만 이사회 총회 인준을 받아 선임되는 상임이사의 면면은 퇴직직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임 과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가 개입하고 있다. 더구나 조합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장치를 두고 있는 제도는 가히 혀를 찰 일이 아닐 수 없다.

조합장은 조합원이 뽑은 대표자이니 명예직화해서 상징성이 있게 하고 실무경영은 상임 이사 에게 맡기되 현재 조합장과 전무 또는 상임이사가 가져가는 급여를 반 이상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천정부지의 직원 급여도 줄일 수 있다. 농민이 어렵고 농업이 쇠퇴한다고 해서 그 종업원의 급여를 줄여야 한다면 그것은 인재영입이라는 측면에서 논리에 맞지 않지만 도시 은행원 급여를 줘야 할 일도 아니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오고 순위고사를 봐서 취임하는 일선 교사의 급여에 준하는 수준에서 조정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복지사업이다

직원의 급여 못지않게 일선의 농협이 챙겨야 할 분야가 조합원 복지라고 생각한다. 현재 팔, 구십대 노인들은 60년대 초창기 농협을 세운 분 들이다. 오늘의 농협은 오로지 이분들로 인해 서 만들어진 직장이다. 이들이 일할 능력이 없고 매일 병원에 출근부를 찍는 삶을 산다고 할 때 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이 농협에 있다면 과언일까.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만들어 잘 운용하고 있으니 만큼 농협이 나서서 운영에 가담한다면 그리 큰 부담 없이 조합원에 대한 복지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삼척 근덕농협이 재가 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사례에서 보더라도 날로 늘어나는 농촌폐교를 활용한 복지사업이 유용하리라고 본다. 연세 드신 농촌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은 경로당이다. 그나마 중간 노인들이 모일 곳은 없다보니 점심 한 끼 공동취사하기도 버거운콘테이너 박스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있다. 농촌의 환경이 이런데도 귀족농협직원들이 있다면 이를 복지농촌이랄 수 있겠는가.

팔십 다섯 되신 어머니를 수발하던 아내가 두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수년째 심장약을 드시는 어머니를 안전하게 모시고 싶어 요양등급을 받아 시내에 있는 주간 보호 센터에 위탁했다. “마을회관까지 갈려면 다섯 번을 쉬었다 갔는디 데려가고 데려오고 얼마나 편한지 물러유! 별 꼴여! 늙은이가 뭐 헌 다구 간식까지 줘유!”
만족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정부 정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그 모든 비용은 국민인 너와 내가 부담하지만 참 고맙다. 우리 어머니처럼 농촌노인들이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조합원에게 이. 미용과 목욕서비스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복지관에 모여 몸도 마음도 건강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점심을 부담 없는 가격으로 드셨으면 좋겠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요양원, 재가복지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가는 장례식도 저렴하게 치를 수 있는 농촌복지의 중심에 농협이 있기를 바란다.

(2016. 02. 29)

농업은 생명산업

쌀은 우리민족 역사 이래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자급자족이 필요한 일종의 무기였다. 한 때는 ‘농자는 천하지대본이요, 쌀은 민족의 혼’이라는 말로 불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쌀 감산정책減産政策이 필요하단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OECD 34개 회원국 중 32위로 약 26%에 불과하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5위의 곡물수입국이다. 식량안보가 통째로 국제시장에 내 맡겨진 꼴이다. 기분 좋게도 우리나라는 2012년 세계무역 7위의 강대국이다. 반도체, 휴대폰 등 몇 개의 효자상품 덕분에 우등생 순위에 들었다. 가끔 책상머리에서 수치만 계산하는 이들은 공산품 생산물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곡물은 수입하잖다. 즉 좁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농토를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까짓 돈도 안 되는 쌀 때문에 비싼 돈 들여 농사짓지 말자고 한다. 이런 주장은 세계질서가 평화로울 때는 가능한 얘기다. 세계 평화 질서가 무너질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북한이라는 불덩이를 안고 있다. 지금 당장 조금 남는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칠 한반도의 지각변동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전 정권마다 매우 긴 기간 동안 농촌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적정면적의 우량농지를 만들었고 품종개량 등 농업혁명을 이루었다. 농업인은 국민의 먹을거리 생산이라는 자부심으로 증산에 힘쓰는 한편 소 팔고 논 팔아서 자녀들을 가르쳤다. 자녀들을 국가의 동량棟梁이 되도록 가르쳤다. 혹자는 대학을 가르켜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아들 딸 들은 농업을 등한시 하고 농촌을 떠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주판알을 굴려본다면 농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공산품에 비해 적다. 생산성이 낮다. 농업보조금 투자가 과다하다. 차라리 수입해서 먹는 게 낫다는 등 농업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다. 농업을 포기한 필리핀의 사례를 보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필리핀은 1990년대 농업투자를 반으로 줄이고, 1995년 쌀 수입을 결정했다.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국제 쌀값이 3배로 폭등하자 쌀을 달라는 시위가 발생해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사정은 쌀의 증산과 소비의 급격한 감소가 서로 맞물려 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쌀 수입이 늘어 재고가 쌓이는 바람에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그 뿐인가, 산지쌀값이 떨어져서 농민이나 수매에 나서는 농협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세계적으로 불안정하고 북한이라는 변수를 고려한다면 결코 감산이나 농지의 감축을 얘기할 계제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내년 10만ha를 시작으로 농업진흥지역을 대거 해제 또는 완화하다고 한다. 이는 식량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조성해 온 우량농지를 훼손하는 것 보다는 임지, 잡종지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 되어야 한다. 쌀 감산이 불가피하다면 당분간 사료작물이나 콩 등 밭작물을 재배하게 하고 쌀을 원료로 하는 가공기술을 통해서 소비를 늘려야 한다. 정부는 묵은 쌀을 내년부터 사료로 쓰며 순수한 쌀만을 원료로 하는 막걸리에만 인증마크를 부여한다고 한다. 쌀이 5%만 들어가는 쌀국수도 95%를 쌀로 쓰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하니 기쁜 소식이다. 이처럼 다각적인 소비 책이 좀 더 나와야 한다. 아울러서 적십자를 통한 남북협력기금이나 국제원조 자금을 활용하여 재고를 소진하는 정책 대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농정소」農政疏1)에서 농업은 후농厚農, 편농便農, 상농上農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국가는 농업을 이문이 나도록 도와주고 농사짓기 편하게 해 주며, 농민을 어엿한 공익기능 수행자로 높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봉길 의사는 「농민독본」에서 농업은 국민의 생명창고이기 때문에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세계적으로도 선진국이 농업을 중시하지 않는 나라가 없으며 농업보조금을 통해서 자국 농업을 보호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동포를 생각해야 한다. 갑자기 38선을 걷어낼지도 모르는 급변사태가 왔을 때 북한주민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의 농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같은 국가의 장기 전략에 부응해서 잉여면적을 휴경하거나 다른 작물로 대체경작하게 하되 농업인에게 적절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마땅히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농업의 존재 가치와 역할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농업은 생명산업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의 문제이고 미래국가 운영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며 목소리 높였던 때가 언제였던가. 산아제한 현수막 잉크가 퇴색하기도 전에 이제는 나라가 맡아서 기를 테니 제발 아기 좀 낳아 달라는 시대가 왔다. 우량농지 다 훼손한 후 ‘농자천하지대본야’라고 외친 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배우고 농지를 훼손하지 않는 슬기를 모아야겠다.

2015. 12. 31

1) 소疏: 옛날에 임금에게 올리는 글(상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