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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화 藥禍

고모! 얼굴이 왜 그렇게 노래요?
지난여름 모처럼 여동생이 왔다. 어머니를 뵈러 온 것이다. 밥상에 앉은 여동생에게 아내가 불쑥 얼굴색을 묻는다. 그날로 여동생은 서울 집근처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간수치가 올라가서 한 달여 병원생활을 했다.

건강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간에 이상이 있었는지를 캐물었다. 입원하기 며칠 전 감기약을 동리약국에서 지어다 먹었단다. 그 후 두드러기가 생기더니 그렇게 되더라는 얘기였다. 약화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감기로 병원을 찾으면 약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며칠을 쉬면 낫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약의 분량에 기가 우선 죽게 되는데 바이러스 죽이는 약에, 소화제에, 신경안정제에 그야말로 한 보따리씩을 처방해 준다.
약을 많이 팔아야 제약회사 살고 더불어 의사와 약사도 좋은 구조인 듯싶다.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다. 의약분업 잘 돼 있는 것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꼴’ 이라고 하는가?
이 약 저 약 잔뜩 먹어주는데 이들이 위속에 들어가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위가 부담하는 스트레스는 불문가지 不問可知이다.
현대는 의술의 발달과 신약개발로 인간의 수명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과연 약에 의존하면서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이 많은 재벌가도, 높은 지위를 차지한 명망가도 여든 살이 넘으면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할지 모르는 나날을 보낸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성 싶다.
약은 적당히 썼을 때에 참 좋은 것만은 틀림없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완화제를 먹고 있는데도 요즘에는 밤중에 두 번씩 깨어 일을 본다. 그러자니 숙면을 이룰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기랬더니 밤중에 오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약을 처방해 줬다. 복용한 결과 신기하리만치 효과를 보고 있다. 약만 가지면 죽었지 싶던 남성도 살아나게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약도 먹을수록 몸에는 독이 쌓인다는 인식을 버릴 수가 없다.

미국의 경우 약 때문에 부작용이나 사고가 생기면 의사, 약사, 환자가 국가기관이나 지역센터에 온 라인, 우편, 전화, 팩스로 우선 보고한다. 접수된 데이터는 ‘국가약화사고 예방위원회(NCC MERP)’라는 통계시스템에서 수집, 관리된다. 부작용이 미미한 ‘레벨1에서 환자사망을 유발한 ’레벨6‘까지 등급을 나눠 관리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약 자체의 부작용에 대해서만 신고가 의무화 돼 있을 뿐 의사나 약사의 실수로 초래된 약화사고에 대해선 보고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2008. 2. 27 조선일보 헬스 발췌) 고 한다.

우리 식구는 드링크제인 구론산을 좋아한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이 집에 올 때 구론산만 사오면 좋아한다. 어느 땐가 식구와 함께 약국에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약사에게 구론산은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급적 안 먹는 게 좋다고 하는 소리를 같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큼한 목 넘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누구나 약 떨어지면 더 아픈 것 같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위를 혹사시키지 않고 건강수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약을 최소화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플라시보효과라는 게 있다. 실제로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인데도 단지 환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복용하므로서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위약僞藥효과라 부른다. 모든 질병이 마음으로부터 온다고 하지 않는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보약이 필요 없다는 생활 속의 진리와 적당한 운동, 휴식으로 온 국민이 더욱 건강해 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약화藥禍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2015. 9. 24

암산업

나에게 암이 있었다는 사실, 그것도 희귀한 흉선암胸線癌을 이겨낸 지난 구 년은 꿈만 같다. 이름 있는 병원마다 암 병동을 별도로 지어 무수한 환자를 암의 공포로부터 구해내고 있다. 그런 병원들의 규모가 날로 커지는 걸 보면 수지맞는 산업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십 년 전 직장에서 퇴직을 일 년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D대학 병원에서 페트시티* 장비가 들어왔다며 할인권을 보내왔다. 아내와 함께 받은 검진 결과 나의 흉선에서 종양이 발견되
었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며 닦달을 해 왔다. 흉선은 가슴과 폐 사이에 길다 랗게 붙어서 성장기 홀몬을 관장하는 기관이라는 설명이었다. 급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다가 일 년이 지난 즈음 제거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됐는데 종양이 악성인지를 보기 위해서 종양내과로 보냈다고 했다. 1주일을 기다
렸는데 암이니 항암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두, 세 번 맞아보고 계속 맞아
야 할지를 판단하자던 치프선생은 세 번을 맞은 뒤에 네 번째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최소 육회를 맞아야 한다기에 왜 처음 말과 다르냐고 항의를 해 보았지만 국제적으로 공인된 학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얼마나 독한 약인지 머리를 비롯한 몸에 난 털은 다 빠지고 구역질이 나서 주사를 맞다가 죽을 성 싶었다. 그 좋고 윤기가 나던 머리가 다 빠졌으니 별의 별 모자를 다 써 보지만 벌써 수척한 몰골과 행색이 중병 환자에 다름없었다. 아무개가 암에 걸렸다는 발 없는 소문은 전국
으로 퍼져 동료들의 위로전화가 걸려오지만 모든 것이 귀찮고 폐인으로 낙인찍는 것이 불쾌 했다.

네 번째 주사를 맞으러 가자 치프선생은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 주사를 놓을 수 없다고 했다. 1주일을 고기 많이 먹고 쉬어서 오란다. 직장으로 돌아와 지인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항암주사 많이 맞으면 안 좋다는데’ 하면서 책 한 권을 건네 줘서 받아왔다. 그날 저녁으로 모두 읽고 주사를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저자가 자기 처남인데 모 대학 병원에 근무한다기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찾아가 만났다. 친절한 그에게 병력을 모두 얘기했고 만약 당신이 나의 경우라면 항암주사를 그만 맞을 건지를 물었더니 ‘그렇다’ 는 확신에 찬 답변을 해 주었다.

항암주사는 정상세포까지도 죽이는데 병원의 수지 때문에 과잉투여가 다반사라던 그 교수는 병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마 후 그 병원에서 쫒겨 났다고 들었다. 수술 후유증
이었는지 눈이 불편해서 수술한 병원의 신경내과를 찾았는데 노교수가 ‘왜 주사를 세 번만 맞았는가’ 고 물었다. ‘주사 맞다가 죽을 것 같아서 못 맞았습니다’ 하는 내 답변이 나가자 ‘그래요, 열 번을 맞아도 재발될 사람은 재발하고, 한 번을 맞아도 재발되지 않을 사람은 안 되지요’ 라고 싱거운 얘기를 해 주는데 용기를 얻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빠졌던 머리도 나고 체중이 서서히 늘면서 건강을 회복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구러 5년이 흘러 암으로부터 졸업하기 까지 마음 졸이며 주기적으로 병원을 드나들던 때 고생은 어느덧 잊혀지고 문득 건강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뉘우침을 자주하게 된다.

암은 한자어로 癌이라 쓴다. 병들 녁 변 안에 입구 자 세 개와 뫼 산 자이니 많이 먹으면 걸리는 질환이라는 뜻이다. 총각직원 때 최고책임자였던 전무님께서 ‘유서기는 술 잘 하나’
라고 물으시기에 ‘잘 못합니다’ 했더니 ‘어허! 이 사람, 일 잘 하기 틀렸구먼’ 하시면서 농협직원들은 농민을 상대하기에 술을 잘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젊어서는 힘으로라도 술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른이 물으시는데 겸손의 말이라고 생각해서 ‘잘 못한다’ 고 했던 건데 그 후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술을 즐겼다. 두주불사斗酒不辭한다는 말이 나를 평가해 주는 말인 줄 알고 마셨다. ‘어제 저녁 코가 삐뚤어지게 마셨다’, ‘필름이 끊겼다.’ 라는 말들을 자랑스럽게 하곤 했는데 정년 무렵이 돼서야 흉선암도 술로 인한 직업
병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산재로 인정해 달래지를 못했다. 평생을 월급 줘 잘 지낸 직장이
었는데 내 미혹을 가지고 까탈을 부릴 용기는 아예 없었다.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진 건 사실이나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도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암세포를 지니고 산단다. 정상세포가 건강하면 암세포가 활동을 못하지만 정상세포가 암세포 에 지게 되면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 정상세포의 자연치유 기능을 강화해 주면 될 일이 다. 그런데도 병원의 상술은 아무리 작은 암세포라도 발견만 되면 즉시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이 있다.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적당히 섭취한다면 약이 필요 없고 생활습관을 올바로 한다면 암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암은 이제 난치일 뿐 불치는 아니다. 위세로 손님을 모으는 암 병동이 산업의 상징이 아니길 바란다.

*페트시티: 양전자 단층촬영장치(페트)와 컴퓨터 단층촬영장치(시티)의 장점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두 장치를 결합해 만든 최첨단 핵의학진단 장비

(2016. 11. 11)

심장

심장은 주먹크기의 자그마한 근육덩어리다. 수축과 이완의 끊임없는 작용으로 혈액순환을 통하여 온 몸의 각 세포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그러니 잠시도 멈춰서는 되지 않는 장기이다 보니 어떤 조직이나 기관에서도 핵심이 되는 부분을 심장으로 표현한다.

어느 날 내과의사와 상담하는 자리였다. ‘병원에서는 왜 짜게 먹지 말라고 하지요’ 라고 물었다. ‘짜게 먹으면 물을 많이 먹어야 하고 그러면 피의 양이 많아져서 심장이 펌핑작용을 하는데 과부하로 혈압이 올라간다.’ 는 설명이었다. 지금까지도 우문우답愚問愚答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확신이 가는 건 심장암은 없다는 사실이다. 심장이 염수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난데없는 부고가 왔다. 지인의 부인이 돌아가셨단다. 평소에 불편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기에 의아한 생각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건강하던 사람이 아침 먹고 뒷산으로 운동을 나간 후 주검으로 돌아왔단다. 어안이 벙벙했다. 누군가와 동행했더라면 위기의 상황은 면하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심장도 기계인지라 언제라도 멈출 수도 있겠다 싶다. 심폐소생술이라도 했더라면 살아날 수 있었을 텐데 혼자였기에 불귀의 몸이 되었다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자동차의 심장은 엔진이다. 어느 때 무심코 운전을 하다가 날이 추우나 더우나 잘 굴러가는 내 차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엄밀히 말해서 차의 심장이 무리 없이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임을 생각하게하고 정기적인 점검이 수반됨을 인식하게 된다.
금융기관에도 심장이 있으니 사고미연방지를 위한 수단의 총칭이다. 도처에서 수많은 사고 사례가 들려 올 때마다 최고책임자께서 늘 강조하셨던 얘기다. ‘잠을 잔다고 심장이 멈추나’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현금수송 중에는 영화에서 보는 강도사건을 경계해야 한다. 금고털이범은 호시탐탐 은행창구를 노린다. 예고 없는 화재사고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직원의 편취 사고 등 인재를 비롯하여 유형도 많았고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은행을 둘러싸고 있는 사고 요인은 불가칙不可則하게 돌아가니 예금자의 소중한 재산을 보관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주의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였다.

우리지역에 환경파괴의 주역으로 등장한 제철공장의 심장을 고로高爐라고 한다. 고로의 불을 끄면 다시 켜는데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명절연휴에도 불을 끄는 일이 없다고 한다. 다른 공정은 쉬더라도 심장인 고로는 멈추지 않는다.

사자성어 중에 천류불식川流不息이란 말이 있다. 흐르는 냇물은 쉼이 없다는 표현으로 높은 덕을 기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심장이 멈추지 않는 이치와 일맥을 같이하는 경구다.

인간도 그렇고, 물경 각종 기계들도 그렇다, 심장이 멈춰서면 생명을 잃는 것인데 오늘의 국가시스템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나라의 심장은 청와대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말단 공무원에까지 다단계 신경망을 통해서 전달되어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수 년 동안 그 시스템이 비선조직에 의해서 농락되었단다. 이미 국가시스템이 정지된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이며 대통령을 주군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의 분노가 전국에서 들끓는다.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의 시위가 누란의 위기를 넘는 분수령이길 바란다.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이 긴요한 시점이다. 나라의 심장도 멈춰서는 안 된다. 심정지에 심폐소생술이 긴요하다면 멈춰선 국가시스템의 정상가동에는 국민의 행동이 요체要諦다.

날씨가 추워지면 심장병 환자가 는다고 한다. 만약 심장이 멎는다면 그건 사망의 다른 표현이다. 피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심장 기능이 모든 장기 건강의 척도가 됨은 불문가지다. 사람이든, 자동차든, 은행이든, 국가시스템이든 작동원리가 건전하게 유지돼야 심장을 지켜낼 수 있다

(2016. 11. 24)

세심탕 洗心湯

매주 화요일이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덕산온천을 다녀온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다녀오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8년 전 직장생활을 마무리 할 즈음 생각지 못했던 흉선암 절제수술을 받았다, 그 후 아내도 유방암수술을 받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요즘 흔한 암이고 불치가 아닌 난치일 뿐이라고 위로해 주지만 ‘평생을 죄 없이 산 죄 밖에 없는데’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의사를 잘 만난 건지? 목욕을 열심히 다녀선지 5년의 치료기간을 경과해서 잘 지내고 있다.
화요일 마다 하는 목욕은 아내와 나의 건강관리에도 중요하지만 어머니가 유난히도 좋아하셔서 거르지 않는다. 어머니는 팔십을 넘기시면서 땀이 잘 나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샤워를 별로 하지 않으신다. 머리는 일주에 한 번 정도 감으시니 그 분 때문에라도 목욕탕에 가야한다.

어머니의 전문 때밀이는 아내다. 아내는 꼿꼿하지도 않은 어머니를 먼저 씻겨드린 후 남은 힘으로 자신의 때를 민다고 한다. 그러니 아내의 목욕시간은 한 시간 반이 넘는다. 남자들에게는 긴 시간이어서 어떤 때는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목욕을 다니는 며느리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아내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따라서 아내의 목욕요구에 흔쾌히 응해주고 어떤 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도 있다.

나는 어머니와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나만의 온천욕을 즐긴다. 입실하면서 소금으로 양치하고 비누로 머리를 감은 후 온탕에 들어가 약 5분 동안 몸을 덥힌다. 그런 후 한증탕에 들어가 발끝 부딪히기 1,000번을 하면서 땀을 빼고 나와서 냉탕과 온탕을 각 2분씩 4회를 반복한다. 그런 다음 면도하고 마무리하면 아내의 목욕시간과 얼추 맞는다.

나만의 온천욕을 즐기는 두 번째 방법은 상상의 세계에서 노닐다 오는 일이다. 목욕탕에 가면 흔히 보이는 꼴불견 손님이 내 상상의 대상이다. 면도를 하면서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 놓아 물이 줄줄 새 나가도 잠글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가만히 그 심보를 헤아려 본다. 그 사람은 아마도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졸부일 것이다. 배우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 평소 책과 담을 쌓고 지낼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든거나 개념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자녀에게도 목욕물을 그리 낭비하지 말라고 교육 한 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꼴불견 손님을 찾는다. 퇴장 후 물기를 닦고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이 무슨 피부의 보약이라도 되는지 펑펑 퍼 쓰는 손님이 있다. 물기 닦는 수건에 병을 거꾸로 해서 따르고는 그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된다. 내가 업장의 주인이라면 손님들이 아껴쓰기를 바랄 텐데 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아쉽다.

마지막 꼴불견 손님은 옷을 입기 전 탈의장에서 마구 털어대는 사람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럴까?. 옷을 털어서 나오는 것은 먼지나 피부부스러기 일 텐데 그 사람 옷에서 금은 보화가 나온다면 그리 털지는 않을 것이다. 나오는 먼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해가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나만의 온천욕을 즐기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감기로 부터의 해방이다. 환절기 마다 한 해 최소 네 번의 감기를 앓았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 감기가 오는 증세는 흔히 피부로 써늘함을 느끼고 목이 잠기며 머리가 무지근 해 오는 과정이 수반된다. 냉, 온욕을 하고 부터는 이러한 증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면역력이 커졌다는 확신이 선다. 그 뿐인가 셋이서 차를 타고 오가면서 들판의 꽃과 작물들, 그리고 소소한 일상들을 이야기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내 나이 몇 살까지 손수 운전으로 목욕을 즐길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왠지 우울해 진다. 하지만 내일 걱정을 오늘 끄집어다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목욕이 세신洗身 뿐만 아니라 세심洗心을 하는 도량[道場]이기에 더욱 그렇다.

2015. 9. 7

1) 도량[道場]: 한국민족문화대백과/불교에서 불도를 닦기 위한 일정한 구역, 또는 그곳에서 진행되는 법회

상추의 계절

상추는 여름채소의 귀족이다. 농사일로 피로에 지친 농부의 밥상에 빠지지 않던 채소였다. 시렁 위의 찬 보리밥을 내려놓고 장독대에서 뜯어 온 상추에 된장을 발라 입이 터져라 집어넣는다. 수북한 사발을 다 비우고 대청에서 베 잠뱅이 벗어 베개 삼아 낮잠을 청했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상추가 당뇨 등 만병을 다스린다고도 하니 예나 지금이나 여름채소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옆 동네에 사는 외숙모께서 상추를 갖다 먹으란다. 그러잖아도 상추의 계절답게 우리 집밥상에도 늘 올라오고 있다. 비록 값은 싸지만 외숙모의 생질사랑에 반갑기 그지없다. 사과 몇 덩이를 싸들고 어머니를 모시고 외숙모의 하우스를 찾았다. 고추를 심어 연필 꽂아 놓은 듯한 이랑사이로 한 뼘 이상은 되어 보이는 싱싱한 상추를 통째로 잘라주신다. 다섯 포기만 넣어도 한 자루 가득 차는 상추를 메고 돌아왔다.

며칠 후 유기농 재배를 하는 조선생이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방문하셨다. 들고 온 봉지는 풀어놓지도 않고 상추예찬론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운 뒤에서야 상추좀 드시라며 봉지를 펼쳐놓는다. 외숙모가 주신 상추보다 식감이 더 좋았다. 둘 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건데 무슨 이유로 차이가 날까. 아마 토양은 물론 물이 달랐을 것이다. 농약도 하지 않았을 테고 수확한 숙기도 달라 그 맛이 같을 수는 없지 싶다.

어찌되었건 상추로 자기부인은 만병을 고쳤다기에 그의 농장에 가기로 했다. 그를 만난 지 일주일 후 여행 삼아 아내와 어머니를 모시고 네비양이 시키는 대로 운전해 갔다. 준비해간 빵으로 새참을 청하고는 만병을 고쳤다고 하시던데 사실인지부터 캐물었다.
“현재 부쳐놓은 농사도 후답을 못하는데 남편이 이 네 동 하우스를 또 빌렸다고 해서 몇 날 동안 바가지를 긁었더니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습디다. 홧김에 밥도 필요 없고 상추만 꾸역꾸역 집어넣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잠이 쏟아지고 몸이 개운해지더군요!“
하면서 자기 남편은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이란다.
아내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생님은 또 상추예찬이다.
“옛날 어른들은 장독대주변에 상추를 심었어요. 뱀이 덤비지 않도록 했는데 뱀이 상추와 접촉하면 눈이 먼다고 해요. 그리고 벌레가 끼지 않으니 약을 칠 일이 없지요.”
온통 상추예찬이다. 하우스 네 동 중 두 동에 가득한데 금주 내로 다 뽑아야 한단다. 따내는 시기를 놓쳐서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중에서는 한 잎이 손바닥 크기를 초과하면 팔리지를 않는다고 한다. 상추가 클수록 잎을 딸 때 나오는 하얀색 즙이 많은데 이것이 우리 몸에 이롭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저 먹기 좋은 크기만 선호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버린다기에 큰 비닐봉투로 십여 포대를 따 가지고 와서 이 집 저 집 후한 인심을 썼다.

마침 상추의 효능을 카톡으로 전해온 친구는 대전에서까지 내 엉터리 전원생활을 훔쳐 본 모양이다. 장독대에도, 한 뼘짜리 밭에도 상추를 심지 않고 얻어다 먹는 걸 어떻게 알고 상추심어 먹으라고 문자를 보냈을까?

상추에 들어 있는 락투세린과 락투신이 짜증과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단다. 현대인에게 있어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상추는 고기나 생선을 싸서 먹으면 그 맛이 더 좋은데 무엇보다 독을 없애준다니 항상 가까이 할 일이다.

아내가 쌈장에 갖은 견과류를 넣어 조리했으니 이만하면 맛도 영양도 배가 되지 싶다. 밥을 싸되 터지지 않을 만큼 가능한 크게 싸서 입에 우겨 넣는다. 씹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양 볼도 서서히 상추 숨이 죽으면서 본래의 모양을 되찾는다.

손 닦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투박한 손으로 상추를 싸서 어머니 입에 먼저 넣어 드린다. 골나지 않게 아내의 입에도 싸 넣어준다. 상추쌈에 웃음을 함께 싸 먹으니 보약이 아닐 수 없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 다름 아니다.

제철음식이 최고다. 이 계절 효능만점의 상추가 값도 싸단다. 많이 먹어 둬야겠다.

(2016. 5. 26)

내 나이가 어때서

그는 신장이 155cm에 체중 53kg의 체격이었으나 술 배가 따로 있다고 소문날 정도로 두주불사斗酒不辭하는 술꾼이었다. 또한 80세에 처음 결혼하였고 102세 때 재혼할 정도로 건강하였다. 그의 노익장이 영국전역에 소문나자 당시 찰스1세가 그를 런던으로 초대하였다. 1589년 그의 나이 152세였다. 왕궁에서는 그 당시 유명한 화가 루벤스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고 그는 프랑스 요리에 포도주를 마시며 런던생활을 즐겼으나 너무 포식하여 몇 달 후 급사하고 만다.

술로서 장수한 세계적 기록의 보유자인 그는 토마스 파 옹翁이다. 그의 초상화는 올드파 양조회사에 팔려 명주 위스키 올드파의 상표이기도 하다. 인간이 어떻게 152세를 살 수 있을까. 성경에 보면 969살을 산 무도셀라가 있었다니 그에 비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주는 필요에 따라 역사 한다고 했다. 대홍수 이전과 이후의 우주가 전혀 다른 걸 생각해 볼 때 모세가 120을 살은 것과 비교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나이다.

2016년 새해를 맞이하는 면 단위 해맞이 행사가 구절산 육각정에서 열렸다. 매일 보는 해건만 첫 날 해에 비는 마음을 안고 산을 찾은 인파가 예년보다 훨씬 많았다. 아마도 살림살이가 풋풋해진 것도 원인일 수 있고, 자녀의 입시, 사업의 번창 등 기도의 사연도 많았겠지만 건강을 비는 마음이 우선이었는지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 하는 인사가 제일 많았지 싶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일이야 말로 이 시대 최대의 소망인 것 같다.

예로부터 61세를 환갑還甲이라 해서 극 노인 취급했고, 70세는 아주 드물다고 해서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오늘날 희수喜壽(77세), 산수傘壽(80세), 미수米壽(88세), 졸수卒壽(90세), 백수白壽(99세)를 넘기고 천수天壽(100세)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의술과 생명과학의 발달, 그리고 소득수준의 증가가 가져온 결과이면서 모두의 소망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되었다. 오래 살되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지 똥 찍어 바르면서 오래 사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단다. 또 한 가지 단서가 있다. 함께 오래 살아야지 나만 혼자 오래 살아서는 외로워서 못 살지 싶다. 아니 자식, 며느리가 먼저 간다면, 친구들이 다가고 없다면 내 존재 의미가 있을까

새해를 맞이하면서 소망해 본다. 120은 못살더라도 시대상황에 맞게, 그저 건강하게 천수 만 하면 좋겠다. 시쳇말대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100세 되는 해 2.3일만 앓고 죽으면 되겠는데 앞으로 호적나이로 35년을 어떻게 산 담. 사회에서 60세 전후하여 퇴출되고 40여년을 살아야하는 팔자야 누구나 겪는 세상이니 나 혼자 걱정 할 문제는 아니로되 나는 적어도 지공地空(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걸 이르는 말)은 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해 왔다. 지난 해 대한노인회가 노인기본법상 노인의 정의를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개정안을 청원한다기에 아예 80세로 높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80까지 일하고 20년을 허송세월하기에도 벅차다. 물론 적으나마 돈 버는 일로, 재능기부하고 봉사하는 일로 설계가 되어 있지만 나도 건강이 문제다.

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진단 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지난해 12월 중순에 피검사, 위내시경검사를 했다. 위염증세 외에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데 눈가의 주름, 이마의 계급장, 머리의 새치, 하수도(?)의 막힘은 왜 생길까.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 복 많이 받고, 더욱 건강하라며 보내주는 기도를 가벼이 하지 말고 보험공단의 진단명령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여 수칙을 실천궁행 할 일이다. 건강진단을 제 때 하지 않아서 병을 키운 뒤 보험을 청구하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지인들이 그렇게 건강하라고 챙겨줬는데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들은 나에게서 등을 돌릴 것 아닌가?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누가 시켜서 되는 일도 아니고, 누구를 위함도 아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 건강 상식은 넘쳐나는데 너나없이 실천이 어렵다. 적게 먹고, 잘 자고, 잘 내 놓고, 움직이고, 성내지 말고, 주변을 깨끗이 하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내 나이가 어때서? 병신년丙申年은 예순다섯이 되는 해! 나는 물론 내 주변 모든 이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2016. 1. )

금연

세계보건기구(WHO)는 창립40주년인 1988년부터 매년 5월 31일을 세계금연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금연을 얘기하기 전에 담배를 만들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정부가 독점해서 만들어 팔면서 한편에서는 금연을 강조하는 건 모순이라는 볼멘소리가 무성하다.

총각 때 하숙을 함께 했던 친구의 권유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2년여를 피우고 끊는데도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새 담배를, 라이터를 버려보길 수차례 했었고, 끊었다 피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끊었는데 하물며 수 십 년을 피워 온 사람에게 담배 끊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 담배는 사람의 눈길을 피해서 피울 수밖에 없다. 내 좋다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함께 근무하는 K국장이 담배를 피우고 옆에 다가오면 느껴지는 담배냄새가 역겹다. 담배를 끊으면 어떻겠냐고 한마디 하지만 내 경험으로 봐서 실행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걸 잘 안다. 열악한 급여를 받고 있는 J에게도 담배 값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금연하라고 하지만 실행가능성은 역시 없는 줄 알면서 던져보는 소리다.
매주 다니는 목욕탕에서의 일이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을 들러 일을 보는 건 평생의 습관이다. 여기저기에 금연 표지가 한 장도 아니고 여러 장을 연이어 붙여놓았건만 버젓이 탈의장에서부터 담배를 입에 물고 화장실 일을 보는 이가 있다. 그것이 가끔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건 탁한 냄새가 가시지 않는 걸 보면 불문가지다. 짧은 시간이나마 숨쉬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해 오다가 관리인의 양해를 구했다. 코팅해서 미리 만들어간 호소문을 대변실 출입문 안쪽에 붙여놓았다.

“죽을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천한 이 몸과 키스해 주시는 주인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제 몸값을 올려놓고 소비를 줄이라던 전 정부는 대기업에서 못 올린 구멍 난 세수를 이 몸을 통해서 메꾸었습니다. 분노한 애연가들이 지지를 거두는 아이러니도 보셨지요? 미천하지만 저에게도 귀하게 대접받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조금 전 이 목욕탕에 들어오시기 전 주차장에서 주인님의 부름을 받았더라면 주인님과 키스하고 맑은 공기를 타고 마음껏 세상을 유영할 수 있었는데 굳이 이 좁은 공간에 들어와서 저를 질식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인님이 내놓으신 것으로 어제저녁에 무엇을 잡수셨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는 압니다. 저로 인해서 주인님이 희열을 느끼고 계시다면 제가 이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질식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더구나 주인님을 제외한 이 곳을 이용하시는 주변 분이 찡그리는 일이 없도록 협조를 바랍니다. 키스하지 말라는 경고가 세 장씩이나 붙어있는 장소입니다. 법은 아름다운 질서입니다. 공중도덕을 지켜주세요.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시는 애국자이시며 이 시대를 문화인으로 사시는 주인님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비록 저와의 동침으로 병마를 부르는 일이 없기를 합장 기도하겠습니다. 불초 꽁 초 올림”

굳이 담배를 화장실에 동행해야 하는 건 순전히 습관 때문이리라. 옛날 화장실은 냄새가 고약했으니 이를 중화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요즘엔 금연 장소로까지 정하고 있는데도 담배를 피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호소문에 호응하여 쾌적한 공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

내가 젊어서 담배를 피우다가 끊었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인지 두 아들도 담배는 아예 피우질 않는다. 며느리들에게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만도한데 당연지사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부모는 반면교사라고 하니 손자 녀석들도 담배 피우는 놈은 없으리라.

경제논리로만 보면 여유 있는 사람보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담뱃값이라도 아껴야할텐데 현실은 그 반대다. 평생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가정해서 10여년을 저축했었다. 이 세상 하직할 때 어려워 공부 못한 사람에게 준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이들 학비로 써버린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2017년 금연의 날 주제는 ‘담배-국가발전의 위협’ 이란다. 담배가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 경제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라고 하니 금연에 동참하는 주변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2017. 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