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수행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절은 신장의 물 기운을 끌어올려 심장의 불기운을 끄므로
배는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시원하게 함에 따라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상쾌하고 평안하게 한다.
“딱, 딱, 딱.”
경기도 양평군 단원면 석산리. 소리산 첩첩산중의 해발 400미터 고지에 있는 법왕정사에서 새벽의 적막을 깨우는 죽비소리가 울린다. 1배,2배,3배······.
절을 하기에 절(사찰)이라고 했던가. 법왕정사 법당 맨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이는 청견 스님이다. 청견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추어 10여 명이 절도 있게 절을 한다. 사고로 한 팔을 잃은 거사도 연신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가 숙이는 모습이 절묘하다.
수행을 위해 이곳에 온 이들은 매일 새벽 5시부터 법당에서 무릎 꿇는 장궤 자세로 한글 <<금강경>>을 독송하고, 석가모니불을 염불한 뒤 아침 7시까지 108배를 한다. 절을 많이 해서일까. 스님의 몸은 무예의 고수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웃음은 어린아이 같다.
그가 제시하는 대로 엎드릴 때 발가락을 꺾고, 바닥에 고개를 숙일 때 입으로 숨을 내뱉다 보면 108배뿐 아니라, 1080배, 3천배, 1만 배까지도 무리 없이 거뜬히 해내곤 한다. 특히 엎드릴 때와 일어설 때 발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탓에 마음이 자연스레 발가락에 집중돼 차분해지고 머리엔 찬바람마저 느껴진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엔 100여 명이 3천배를 한다. 올해 들어서만 3천배를 거쳐 2박3일 동안 1만 배를 해내고 청견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은 이도 20명이나 된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해인사로 출가한 그가 ‘절 스님’이 된 것은 1980년대 초 불의의 사고를 겪고 나서였다. 무려 3년 동안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누워 지내야만 했다.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염불뿐이었다. 다른 수행을 해보려 해도 불가능했다. 그는 누운 채 기를 쓰고 ‘석가모니불’ 만을 염송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흡을 초월하고, 몸의 고통도 초월하고, 번뇌망상도 초월하는 삼매에 들었다. 그때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어 부처님 앞에 몸 바쳐 예배 공양을 올리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절이었다.
처음엔 몸을 가누지도 못해 부축을 받으며 죽을 힘을 다해 절을 했다. 100일 후엔 108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3년 동안 <<금강경>>을 10만번 독경했고, 하루 3천배씩 무려 1천일간 계속해서 절을 했다. 인간에겐 불가능해 보이는 수행이었다. 이어서 하루 1만 배씩 100일간 계속 절을 하는 초인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살아 있는 수행 체험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절 수행을 보급하고 있다. 그를 따라 절을 하다 보면 절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확인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청견 스님은 절을 ‘최고의 요가’로 거듭나게 했다. 절의 단순한 동작 안에는 호흡법과 신체 운동, 마음 다스리기가 함께 담겨 있다. 청견 스님이 제시한 절 방법은 간단하다.
- 합장한다.
- 합장하고 선 자세에서 그대로 수직으로 천천히 무릎을 구부리면서 꿇는다. 이때 허리는 구부리지 않아야 한다.
- 기마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앞으로 짚는다. 발가락을 땅에 대고 발바닥을 쫙 펴서 세운다.
- 몸을 앞으로 숙여서 엎드림과 동시에 왼발을 오른발 위에 살짝 얹는다
- 손바닥을 하늘로 뻗은 다음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한다. 엎드리는 순간 입으로 숨을 내쉬는데 배에서부터 숨이 나가게 한다.
- 절을 한 뒤 손바닥을 뒤집어 바닥을 짚고 다시 무릎 꿇고 합장한다. 이때도 발가락을 꺾어 바닥에 대고 발바닥은 똑바로 세운다.
- 절을 했을 때의 탄력을 이용해 무릎을 펴면서 기마자세로 그대로 일어선다.
- 공손하게 바로 선 자세에서 두 손을 심장 위치에 가지런히 모아 합장한다.
청견 스님은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절을 하라고 권한다. 무릎을 꿇을 때 ‘우두둑’ 소리가 나는 것은 그동안 운동 부족으로 무릎에 몰려 있던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는 좋은 현상이므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또한 무릎을 꿇고 발바닥을 펴고 앉는 순간 용천혈이 자극돼 평소에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은 용기와 배짱이 생긴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용천혈은 신장으로 통하므로 신장과 방광이 좋아지면서 불평불만과 원망심이 소멸된다는 것이다. 기마자세로 하단전이 강화되면 하체가 강해지고 정기가 충만해져서 정신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몸이 가벼워져서 병도 사라진다고 한다.
절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직접적인 효과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수승화강은 신장의 물 기운을 끌어올려 심장의 불기운을 끄고, 배를 따뜻하게 하고, 머리를 시원하게 한다. 그래서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상쾌하고 평안해진다.
절을 할 때 청견 스님은 창문을 닫고 방 안 온도를 약간 높게 한다. 그러면 수많은 참가자들이 동시에 내뿜는 열기로 법당이 후끈 달아오르고, 대부분 땀으로 목욕을 한다. 열린 모공을 통해 독소가 빠져나가면서 이루말할 수 없는 악취가 자기 몸에서 나오는 것을 체험하기도 한다.
청견 스님은 하룻밤에 3천배를 할 수 있는 3천배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45분간 300배를 하고, 15분을 쉰 뒤 다시 45분간 300배씩 10번 반복한다. 매주 3천배 정진에 참가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무엇보다 피부가 놀랍도록 맑아지고 살이 빠지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의 변화에 우선 깜짝 놀란다.
3천배 정진을 하다 보면 오랜 세월 동안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업장이 갑자기 터지면서 끊임없이 눈물과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놀라운 빛을 보기도 한다.
그런 효과 때문인지 매일 아침 집에서 108배를 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아침에 20~30분 시간을 내서 108배를 하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질 수 있다.
청견 스님은 절수행만 이끄는 게 아니다. 무려 10안거 동안이나 선방수행을 했음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그는 수행의 효과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행-수도 프로그램을 몸소체험했다. 그 결과 집중 삼매에 들 수 있는데, 절과 염불로 이루어진 독특한 기법을 찾아냈다. 그는 이곳에 오는 수행자들에게 2박3일 동안 기본적인 절 교육을 시키고 다시 3박4일 동안 마음을 띄워 이 지우도록 한 뒤, 4박5일 동안 ‘부처님 고맙습니다’를 30만 번 염하게 한다. 이어 108일 동안 하루 15만 번 석가모니불을 염불해 행주좌와(움직이고, 멈추고, 앉고, 누움) 어느때나 삼매가 끊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도록 이끈다. 그런 다음 인연이 있는 큰 스님들로부터 화두를 받아 화두선을 하게 한다.
절수행과 더불어 참가자들이 가장 놀라운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감사 수행이다. 감사 수행은 ‘부처님 크신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이렇게 하루 9시간 이상 3일을 연속해서 하다보면 어느새 불평불만과 원망심으로 어두웠던 마음에 광명이 깃들고 온 세상과 주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했던 장애에 대해서조차.
법왕정사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 염불 소리에 환희의 빛이 온 우주 법계로 퍼져나간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